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을 생각할 때,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예수의 이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밝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죄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송명희 시인은 극심한 장애와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만난 후 그 이름을 “비밀이며 보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존 뉴턴 역시 죄 가운데 살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만난 뒤, 그 이름이 슬픔을 달래고 상처를 치유하는 우리 귀에 감미로운 이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의 이름이 감미롭습니까? 숨겨진 보석과 같고 마음을 설레게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이렇습니다.
1. 구원의 필요성
우리가 구원 받을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 감격과 감사하게 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이 감격과 감사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필요성도, 예수의 이름도 귀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장 이식을 통해 생명을 얻은 형이 동생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긴 것처럼, 구원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예수의 이름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도덕적으로 뛰어나 보였지만, 성경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 부르며 그 내면의 부패함을 지적합니다. 인간의 선함은 외적인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죄 아래에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가 죄 가운데 있으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타락한 본성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역사 속에서도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자들조차 잔혹한 행동을 저질렀던 사례는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쉽게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증거는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떳떳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인식이 없으면 예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필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죄인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죄인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착하게 살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죄인이라는 의식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2. 구원의 자격
죄인은 다른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명을 내어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스스로도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에 타인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역사 속에서 성자로 불렸던 부처나 공자 같은 인물들도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이며, 스스로도 진리와 구원에 대해 완전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 역시 구원받아야 할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성경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 근거는 그가 죄없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의 씨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이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과 지성인들에게 공격받았지만, 제자들이 굳이 이 기록을 남긴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예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임을 오히려 증명하는 것입니다. 창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족보는 대부분 남자의 후손으로 기록되었지만, 메시아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는 동정녀 탄생을 통한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한 것이며, 죄와 상관없이 태어나야 메시야로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합법적이고 유일한 구원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도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라고 선언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인 것을 증거해 줍니다.
3. 구원의 방법
예수님이 왜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가? 그것은 그분이 흘리신 ‘속죄의 피’에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한 희생 제물이 필요하며, 예수님은 그 역할을 완전하게 이루신 분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부른 이유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과 레위기의 속죄제물을 모두 성취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이유도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바로 이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 피로 우리에게 구속과 죄 사함을 주셨기 때문에 성탄의 계절은 진정한 기쁨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의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을 생각할 때,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예수의 이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은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밝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죄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송명희 시인은 극심한 장애와 절망 속에서도 예수님을 만난 후 그 이름을 “비밀이며 보석”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존 뉴턴 역시 죄 가운데 살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만난 뒤, 그 이름이 슬픔을 달래고 상처를 치유하는 우리 귀에 감미로운 이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의 이름이 감미롭습니까? 숨겨진 보석과 같고 마음을 설레게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이렇습니다.
1. 구원의 필요성
우리가 구원 받을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 감격과 감사하게 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이 감격과 감사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필요성도, 예수의 이름도 귀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장 이식을 통해 생명을 얻은 형이 동생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긴 것처럼, 구원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예수의 이름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도덕적으로 뛰어나 보였지만, 성경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 부르며 그 내면의 부패함을 지적합니다. 인간의 선함은 외적인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으며,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은 죄 아래에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가 죄 가운데 있으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특정 민족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타락한 본성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역사 속에서도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자들조차 잔혹한 행동을 저질렀던 사례는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쉽게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의 증거는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설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떳떳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인식이 없으면 예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필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죄인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던 죄인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착하게 살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죄인이라는 의식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2. 구원의 자격
죄인은 다른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명을 내어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인간은 스스로도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에 타인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역사 속에서 성자로 불렸던 부처나 공자 같은 인물들도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이며, 스스로도 진리와 구원에 대해 완전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들 역시 구원받아야 할 대상임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성경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 근거는 그가 죄없이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의 씨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이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과 지성인들에게 공격받았지만, 제자들이 굳이 이 기록을 남긴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예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임을 오히려 증명하는 것입니다. 창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족보는 대부분 남자의 후손으로 기록되었지만, 메시아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이는 동정녀 탄생을 통한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한 것이며, 죄와 상관없이 태어나야 메시야로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합법적이고 유일한 구원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도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라고 선언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인 것을 증거해 줍니다.
3. 구원의 방법
예수님이 왜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가? 그것은 그분이 흘리신 ‘속죄의 피’에 있습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한 희생 제물이 필요하며, 예수님은 그 역할을 완전하게 이루신 분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부른 이유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과 레위기의 속죄제물을 모두 성취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이유도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탄의 기쁨은 바로 이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 오셨고, 그 피로 우리에게 구속과 죄 사함을 주셨기 때문에 성탄의 계절은 진정한 기쁨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의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