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받을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는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둘째는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 셋째는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 오늘은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역사적으로, 어린이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어떤 학자는 18세기를 민중을 발견한 시대, 19세기를 여성을 발견한 시대, 그리고 20세기를 어린이를 발견한 시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2천 년 전, 어린이를 존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로마 시대에는 부모가 자식을 죽이거나 버릴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도 있었으며, 심지어 자식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린이 날이 제정될 당시 우리 사회는 어떠했습니까?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3년은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일본은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며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어린이들은 그 노동력의 24.3%를 차지하며 고통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방정환 선생은 조국의 미래는 아이들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하였습니다. 원래 어린이날은 5월 1일로 정해졌고, 당시 동아일보에 발표된 제정 선포문에서는 어린이들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어린이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임을 의미합니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어리신 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도 한 인격체로서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여자와 아이는 인구조사에서 제외되었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귀중히 여기며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18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자녀를 귀하게 여기고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요?
1. 먼저 아비들아!
사도바울이 엡6장 4절에서 ‘아비들아!’라는 표현은 아버지가 가정의 최종 책임자임을 강조합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부계 양육과 모계 양육이 존재하는데 정통 유대인들은 모계 양육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아버지를 언급한 것은 가정의 질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경우, 가정교육이 자녀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와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녀가 스스로 앎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국에서도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편이지만, 유대인 가정의 접근법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저력은 건강한 가정교육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가 서로 잘 지내야 하며, 가정에서 웃음이 넘치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은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남편과아내 보다는 자녀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늘 웃음이 있는 가정, 부부가 건강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2.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정태기 목사의 사례를 통해, 상처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가 자라면서도 계속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이 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냐면, 자녀를 노엽게 하면, 그것이 일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녀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주의 교훈과 훈계로
마지막으로,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장 4절에서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은 자녀를 가르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녀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교훈과 훈계를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께서 주시는 교훈으로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반항과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는 자녀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특히 엄마는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때때로 아이들의 반항을 가장 많이 겪을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며, 세상의 성공보다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하시고, 날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받을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는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둘째는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 셋째는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 오늘은 어린이 주일을 맞아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역사적으로, 어린이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어떤 학자는 18세기를 민중을 발견한 시대, 19세기를 여성을 발견한 시대, 그리고 20세기를 어린이를 발견한 시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2천 년 전, 어린이를 존귀하게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로마 시대에는 부모가 자식을 죽이거나 버릴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도 있었으며, 심지어 자식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린이 날이 제정될 당시 우리 사회는 어떠했습니까?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3년은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일본은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며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어린이들은 그 노동력의 24.3%를 차지하며 고통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방정환 선생은 조국의 미래는 아이들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하였습니다. 원래 어린이날은 5월 1일로 정해졌고, 당시 동아일보에 발표된 제정 선포문에서는 어린이들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인격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어린이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임을 의미합니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어리신 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이도 한 인격체로서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여자와 아이는 인구조사에서 제외되었지만,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귀중히 여기며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18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자녀를 귀하게 여기고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까요?
1. 먼저 아비들아!
사도바울이 엡6장 4절에서 ‘아비들아!’라는 표현은 아버지가 가정의 최종 책임자임을 강조합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부계 양육과 모계 양육이 존재하는데 정통 유대인들은 모계 양육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아버지를 언급한 것은 가정의 질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경우, 가정교육이 자녀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와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자녀가 스스로 앎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한국에서도 자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편이지만, 유대인 가정의 접근법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저력은 건강한 가정교육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가 서로 잘 지내야 하며, 가정에서 웃음이 넘치고,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부부가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은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남편과아내 보다는 자녀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늘 웃음이 있는 가정, 부부가 건강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2.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은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정태기 목사의 사례를 통해, 상처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는 그가 자라면서도 계속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이 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냐면, 자녀를 노엽게 하면, 그것이 일생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자녀의 감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주의 교훈과 훈계로
마지막으로,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장 4절에서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은 자녀를 가르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녀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교훈과 훈계를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께서 주시는 교훈으로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반항과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는 자녀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이며, 특히 엄마는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때때로 아이들의 반항을 가장 많이 겪을 수 있습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며, 세상의 성공보다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잘 양육하시고, 날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