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 눅10장 25-37절

2025-03-15

  인류는 오랫동안 영생과 죽음의 극복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생명을 연장하려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초파리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연구를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 수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명이 연장되더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에게 영생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를 질문한 장면은 영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동시에, 질문의 동기가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의도로 질문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되물으시며 질문의 본질에 주목하게 만드셨습니다. 오늘 두 질문을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1. 영생을 어디서 찾는가?

 율법교사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10:25)라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은 어떤 대답이 필요한 질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26절)로 반문하며, 그가 율법의 핵심을 알고 있음을 확인하십니다. 율법학자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은 행동 중심의 답변을 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질문 자체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되물으신 것입니다. 율법에 기록된 내용을 묻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며, 진정한 영생의 진리가 성경에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5:39처럼 성경이 예수님을 증언하며 영생의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는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정확히 답하며 100점짜리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칭찬하며 율법을 행하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로마서 3:20과 같이 율법은 인간이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며, 약 2:10에서 율법의 하나라도 범하면 모두 범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 많은 인간 중에 이것을 실천한 대가로 살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지금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말씀이고, 지금 자신을 제대로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2.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눅10:29).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감을 드러내며 자랑하려는 의도를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질문에 대해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는 그의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제사장과 레위인은 도움을 피했지만, 유대인들이 혐오하던 사마리아인이 희생적 사랑으로 강도를 만난 자를 돌보았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는 이웃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주는 것인데, 단순히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희생적인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이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눅10:36). 율법학자는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 답합니다(눅10:37). 이는 율법학자가 자신의 편견을 넘어서 사마리아인을 이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이끄신 것입니다.

3. 누가 강도만난 사람인가?

 율법교사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눅10:29)라고 물으며 자기 의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질문을 뒤집어 그가 구원받아야 할 자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강도 만난 자는 바로 율법교사 자신이었고, 네 이웃은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율법학자의 질문을 통해, 그가 자신의 본 모습을 보게 하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도록 이끄십니다.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며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율법학자는 사실 도움과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은 사마리아인이다"라고 선포하시며, 구원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합니다. 이웃은 도움을 주는 자가 아니라, 은혜를 받아야 할 자입니다. 율법교사는 자신이 "강도 맞은 자"이며,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고(계 3:17)는 이와 연결됩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자랑은 영적 가난함을 가린 거짓 고백입니다. 인간은 죄로 벌거벗고 상처입었지만, 스스로 이를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류를 위해 희생적 사랑으로 다가오셨고, 그 은혜는 "행위가 아닌 선물"(엡 2:8-9)임을 선포하셨습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교회는 "은혜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자랑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를 사람들과 나눌 때, 비로소 "참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고 베풀어서 참 영생의 길을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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